[단상] 갑질이 만연한 시대, 그 경계선에 대한 소회

어느 정치인의 갑질이 연일 장안의 화제다. 그런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란다. 어린 인턴 직원을 하인 부리듯 한 것은 기본이고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예사로 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연일 호들갑을 떨지만,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의 수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아내는 인근 교육청에 일하러 다녔다. 교육청 업무가 몰릴 때마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인데 꽤 오래 했던 일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6시 ‘땡’ 하면 퇴근하여 근처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귀가하던 사람이 그날은 모든 과정 생략하고 집으로 왔다. 와서 하는 말이 사뭇 진지하다.

같이 일을 하는 담당 주무관은 몇 달 뒤 결혼할 예비 신랑인데 하필 바쁜 시즌에 결혼 준비까지 겹쳐서인지 일하는 내내 피곤해하고, 간혹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포기하고 휴게실에 널브러지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다고 했다.

오늘은 주무관이 자신의 업무를 도와주는 우리에게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함께 식당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최근 방문했던 한 민원인이 자신의 아이를 본인이 원하는 학교로 배정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고 했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보란 듯이 시커멓게 문신을 한 몸을 드러내면서 “당신이 일 처리 이렇게 해서 내 자식 인생이 잘못 풀리면 당신 인생은 내가 끝내 줄 거다”라며 행패를 부리는데 난감하고 겁도 나고 정말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란다.

아내는 이 얘기를 내게 전하면서 사람들의 갑질이 정말 문제라고 했다. 나는 세상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데 그 정도로 그러냐며 핀잔을 줬다. 자신 생각이 공감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던지 아내는 그 후로도 며칠 동안 그 이야기를 꺼냈는데 마침 요즘 정치인의 ‘갑질’ 문제가 나와 새삼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그 민원인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의 ‘갑질’ 운운에 공감을 못 했던 것은 그 민원인이 ‘갑’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이 못된 짓을 해야 갑질이지.

민원인과 공무원의 관계에서 표면적으로야 민원인이 ‘갑’, 공무원이 ‘을’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론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갑이 되려면 우월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 보통의 민원인이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냥 힘없는 개인일 뿐이지 않을까.

정말로 그 민원인이 갑이었다면 민원을 하려고 직접 찾아가는 수고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을’인 것은 분명한데 아주 못된 ‘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갑’과 ‘을’이 뒤섞여서 못된 짓을 일삼으니 ‘갑질’ ‘을짓’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편의상 ‘갑질’로 퉁쳐진 느낌인데, 분명한 것은 세상이 너무 혼탁해졌다는 사실이다.

갑질이란 무엇이고 그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내가 우스워졌다. 경계를 따져 뭐하나 애초 ‘질’이란 말이 붙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이젠 갑질, 을짓뿐만 아니라 꼰대질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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