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단테가 경멸했던 중립적인 자들, “이들은 살아서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hellfire

”지옥 불이라는 것은 한때 위기 속에서 중립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다.“

이는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 사건으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해 3월,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는 길목에서 탄핵반대 시국 선언에 참여했던 어느 젊은 목사의 말이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짧지만 울림이 있었던 그의 메시지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눈치를 보며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며 방관하던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엄중한 시기, 그 목사는 어째서 중립적인 입장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그의 말은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 중 ‘지옥 편(Inferno) 제3곡’에 나오는 문장이다. 지옥의 입구, 이른바 ‘지옥의 대기실(Ante-Inferno)’이라 불리는 곳에서 안내자인 스승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말을 건넸다.

“세상은 이들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남겨두지 않았네. 자비도 정의도 그들을 멸시한다네. 그들에 대해 말하지 말고, 그냥 보고 지나가게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문에 들어서서 처음 본 무리는 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었는데,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없는 사람 취급하라고 한 것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던 이들은 살아생전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며 아무런 도덕적 선택도 하지 않았던, 즉, 아무런 신념 없이 기회주의적으로 살았거나 방관자로 머물렀던 자들이었다.

단테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비겁하게 행동한 사람들을 경멸했던 모양인지 베르길리우스의 입을 통해 “이들은 살아서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라며 “못 본 듯 지나가라”라는 말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치욕을 안겼다.

단테의 시선에서 중립은 평화주의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순간에 자기 안위만을 위해 입을 닫고 있다가 결과를 확인한 뒤 승자에게 붙으려는 비겁함으로 보였던 것이 아닐까?

단테의 신곡은 ‘중립적인 태도’를 승리에 무임승차하는 행위로 규정, ‘멸시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단테의 신곡이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으로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단테의 신곡이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는 것은 결국 단테의 의견에 모두가 수긍하고 동감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단테는 존재 자체를 지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응징이라 생각했던 듯한데 정작 응징의 대상자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단테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는 의외로 많다.

단테의 신곡이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것처럼 국내 장르문학에서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가 최고의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데, 여기에는 ‘영원의 숲’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무서운 공포장치가 소개되어 있다. 다름 아닌 사람들로부터 ‘잊힘’이다.

일스 공국의 북쪽에 거대한 숲이 있고, 여기에는 드래곤 로드의 대미궁이 있다. 이 숲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온 이가 없어 사람들은 숲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부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온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결국 없었던 존재가 되고 만다.

이 에피소드의 장치는 간단하다. 자신의 기억은 물론이고 자신을 알던 모두의 기억 속에서도 자신이 사라져버린다. 존재 자체가 완벽하게 지워지는 공포.

그리고 여기에는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명언이 나온다. 자신을 알던 모두의 기억 속에 자신이 있어야만 단수가 아닌 것이 되므로 앞서 얘기한 공포와 그 맥락은 같다.

그 외에도 김탁환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과 같은 책의 제목이나, 연예인들이 흔히 하는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는 말이나,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외엔 욕이라도 뉴스에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시중의 말은, 잊히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외동인 딸아이가 다섯 살 때 내가 과자를 뺏어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딸은 눈에 힘을 주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 마음속에 아빠는 없어”라고 외쳤는데, 그때 나는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는 내상을 입고 말았다.

이렇듯 ‘잊혀진다는 것’은 유명인이거나 나 같은 보통사람이거나 상관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서는 고통스러운 일로써 피하고 싶은 상황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잊힌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것,
존재하였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가 된다는 것.

엄혹한 시기, 젊은 목사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한 문장을 소개함으로써 사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순간에 중립이라며 뒤로 물러서 있는 사람에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철저히 무시당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 아닐까?

글 · 보통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