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김수영의 시에 담긴 질책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부조리한 현실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상대로 화풀이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으로써 2024년 현역 시인들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힌 바 있을 정도로 수작이다.

박완서 작가는 1990년에 펴낸 수필집의 제목을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할 정도로 이 시의 첫 문장은 사람의 눈길을 끈다.

이들 작가는 시와 에세이를 통해 자신들이 ‘작은 일에만 분개한 사실’들을 고백하며 자책하지만, 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빗대 독자들에게 작은 일보다는 큰 부조리에 분개하라고 촉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부터 부조리한 현실에는 침묵하면서 작은 일에만 분개하게 된 것일까? 강직하고 올곧은 선비들은 어디 가고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 비겁한 씹선비들이 득시글하게 된 것일까?

꽃신을 신은 원숭이라도 된 것일까?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된 것일까?
시골 쥐가 행복할까 도시 쥐가 행복할까?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참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질문이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글 · 윤보통|a.k.a. 보통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