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학의 교수라는 K 씨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네타냐후와 트럼프가 죽인 이란의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 175명이 내 가슴을 찢는다. 이런 야만적 행태에 일말의 가책도 없는 인간들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정말로 우울하다.”
미국–이란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의 여자 초등학교가 폭격받아 많은 초등학생이 희생당한 일을 빌미 삼아 미국을 비난할 목적으로 작성한 글로 보였다. 아마 가해자를 미국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그의 글에서 이란 초등학생의 희생에 대한 애도나 슬픔의 감정보다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심으로 슬펐을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이 틀렸을 것 같지는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다른 글들도 찾아보았다. 175명의 희생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면 폭격 직전에 있었던 이란 정부에게 죽임을 당한 4만 명의 민간인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이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가 미처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고, 만약 알았더라도 그가 슬퍼했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 의한 희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K 씨는 희생당한 이란 초등학생에 대한 슬픔보다 미국,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를 우리에게 전파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이번 이란 초등학생들의 희생이 미국의 폭격 때문이 아니라 이란의 오폭으로 발생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소식은 그에게 실망감을 주었을 것 같다. 아마 지금쯤 자신의 성급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다 다시 미국의 폭격 때문이라고 밝혀지면 “거봐라 내 말이 맞지” 하면서 기쁘게 슬퍼하겠지.
K 씨와 같은 사람의 특징이 선택적으로 슬퍼하고, 선택적으로 분노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우리 국민을 아무리 속여도 여간해선 내성이 생기지 않는 바보로 취급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간의 레퍼토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우리 국민을 마냥 바보로 여기는 것과 같다. 우리 국민이 한때는 바보였을지 몰라도 마냥 바보는 아니다.
그런데 이란 초등학생의 죽음에 대한 K 씨의 슬픔과 분노가 이란 국민에게는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의 이란 폭격이 있었던 직후 이란 국민은 거리로 나와 춤까지 추며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사실에서 이들에겐 희생에 대한 슬픔보다 폭압에 대한 고통이 더 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란 출신 모델 호다 니쿠는 이란 정부를 옹호하면서 미국을 비난하는 K 씨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글을 올렸다.
“단 이틀 만에 자국의 비무장 민간인 4만 명 이상을 죽일 수 있는 정부가 만약 핵무기를 갖게 된다면 그것을 과연 평화적으로 사용할지 여러분께 묻고 싶다“
격랑의 중동 정세를 이해하려면 기원전의 역사까지 알아야 할 정도로 어렵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은원관계,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이란의 이슬람 혁명 등 얽히고설킨 것이 너무 많아 중동문제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입방정을 뜨는 모양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무식한 놈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딱 그 모양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라면 역사까지는 제대로 모르더라도 결과에 따른 판단은 할 수 있을 텐데, 그 정도의 사고력도 없으면서 따뜻한 사람인 양 감성팔이를 하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은 우리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억울한 죽음을 살필 때는 가해자부터 볼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다. 사건의 책임자 혹은 가해자의 성분을 따져 내 편이면 애써 외면하거나 묻어버리면서, 상대편의 책임이면 과하도록 슬퍼하며 분노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치졸함은 이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세상에 슬프지 않은 희생은 없다.
보통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