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동네 가전제품을 무료로 고쳐주다 성공한 전파사 사장님

아주 오래전 일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당시엔 고장 난 시계나 선풍기 등을 고치려 전파사를 찾는 일이 많았다. 새것을 사면 좋겠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고쳐서 조금이라도 더 사용하려는 생각에서이다. 고장 난 그 제품도 형편이 넉넉한 이웃이 제품 갈이를 할 때 양도받았거나 선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모두가 그렇게 살았으므로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고쳐서 사용하는 것은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일이라면서 나라에서도 장려하던 일이었다. 이런 모습은 훗날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라는 뜻의 ‘아나바다’ 캠페인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시골 오지보다 더 소외된 도시 속의 산동네였다. 시골은 낙후됐다고 관의 여러 가지 혜택이나 외부의 지원이라도 있지만 도시 속의 오지는 그런 것에도 제외되니 어떻게 보면 가장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50여 호의 가구로 구성된 우리 동네를 비롯하여 우리 동네보다 더 높은 산골짜기에 20여 호를 합쳐 산동네라고 불렀는데, 이 산동네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고장 난 전자제품을 수리할 때 이용하는 전파사가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법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관행으로 굳어졌다. 만일 급한 마음에 다른 전파사를 이용했다면 두고두고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다른 곳을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워낙 오래된 일이고 내가 어렸을 때라 전파사 사장님의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김 군이 어쩌고 했었던 것이 기억나는 것으로 봐서 그의 성이 ‘김’이라는 것과 우리 동네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산동네인지라 방값이 워낙 싸서 간혹 외지인이 와서 하숙하거나 자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숙은 주인이 숙식, 그러니까 자는 것과 먹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고, 자취는 잠자리만 제공하는 것이다. 하숙생과 자취생은 주거지 이전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언제라도 훌쩍 떠나기도 하고 몇 달씩 밀린 하숙비 등을 떼먹고 도망가기도 한다. 그래서 같이 동네에 살더라도 온전한 동네 사람으로 대우받지는 못한다.

어느 날, 김 군은 우리 동네에서 자취방을 구해 반(半) 동네 사람이 됐다. 키는 보통, 인물도 보통, 20대 초반의 지극히 평범한 김 군은 손재주가 좋았다. 그래서 주인집의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뚝딱뚝딱 잘 고쳤다. 어쩌면 타지에서 그런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공구들 때문이었다. 웬만한 집에선 구비 하지도 않는 롱로즈(롱로우즈)나 닙빠(니퍼) 등을 그는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와 전파사 사장님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김 군의 솜씨가 소문이 나다보니 아랫집, 윗집, 옆집에서도 김 군을 찾았다. 라디오나 선풍기가 고장 나기도 하고, 다리미가 고장 나기도 했다. TV는 안테나가 바람에 돌아가서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도 김 군을 찾았다. 하여간 김 군이 없으면 동네가 안 돌아갈 정도였으니 김 군이 없었을 땐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 군이 제품을 수리해 준다고 해서 주어지는 보상은 따로 없었다. 받을 사람이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는 듯이 행동했으니 동네 사람들도 편하게 김 군을 대했다. 아침 일찍 불러도 오고, 밤늦게 불러도 오는 김 군은 얼굴 한번 찡그리는 법 없이 기분 좋은 얼굴로 와서 척척 수리해 줬다. 시간이 걸리는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수리했다. 어렸을 때 생생하게 목격한 사실이다. 따로 작업실이 있으면 제품을 가져가서 수리했을 텐데 작업실이 없으니 고장 난 집에서 고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리하고 나면 그 집에서 저녁이나 아침을 먹는 것으로 셈은 끝이다.

동네에는 가내공업으로 베를 짜는 집이 두어 군데 있었는데 김 군은 여기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런데 허구한 날 이집 저집 불려 다니니 처음엔 괜찮다가 뒤엔 문제가 되었다. 반상회가 열렸을 때 김 군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그때 결정된 내용이 김 군에게 작업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전파사를 동네에 차리게 한 거였는데 간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업장을 만들어줘도 동네 사람들에게 수리비를 받지 않는 것은 한결같았다. 부품을 바꿔야 하는 경우엔 부품값만 받았고 그 외는 일절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김 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 군이 돈을 벌어야 동네 사람들 마음도 편할 텐데 늘 무료로 수리를 해주니 항상 빚진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 산동네를 벗어나 아랫동네에 허름하지만 간판 달린 전파사를 차려주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나오더니 어찌어찌해서 정말 그렇게 됐다. 아랫동네는 오가는 이들이 많으니, 일거리도 많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랫동네에 전파사를 차렸어도 김 군과 우리 동네의 관계는 여전했다. 누구네 집에 제품이 고장 났는데 무거워서 들고 오지 못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서 무료로 고쳐주곤 그냥 갔다. 그런 관계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고, 김 군은 우리 동네 사람이 주선했는지 아래 동네 사람이 주선했는지는 모르지만, 결혼도 했다. 그리고 호칭도 어느새 김 군에서 김 씨를 거쳐 김 사장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김 사장의 전파사는 아랫동네에서도 두어 번 옮겨 신제품도 파는 명실상부한 전파상이 되었다. 가전제품을 수리만 해서는 돈 벌기 힘드니 새것도 팔면서 수리도 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제품을 공급하는 큰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아랫동네의 힘 있는 사람이 도와줬다는 얘기도 있었고, 위아래 동네 사람들이 모여 뭔가 서류를 만들어 단체로 지장을 찍었다는 말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전파사 김 사장이 직접 움직인 것은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은 확실하다. 새 제품을 들여놓으려면 보증이 두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전제품의 수리는 물론이고, 새로 장만하는 것까지 김 사장이 담당하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돈이 없어도 그곳에서 할부로 살 수 있었고, 고장이 나더라도 걱정을 안 했다. 김 사장은 할부금을 독촉하는 법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도 조금 늦어지는 일은 있어도 김 사장의 할부금은 떼먹지 않고 잘 갚았다. 할부금을 제때 못 낼 때 사람들은 ‘도꾸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했다.[참고]

그렇게 전파사 사장님과 우리 동네 사람들의 관계는 계속 유지됐는데 내가 동네를 떠난 이후의 소식은 정확히는 모른다. 아마 좋은 관계는 계속되지 않았을까 싶다. 새로 생긴 마을금고의 이사장이 되었다는 소문까지는 들었는데, 빈손으로 동네에 들어와 그만큼 성공했으니 자수성가한 삶이 아닐까.

경기가 나빠지려는지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인간관계마저 퍽퍽해져 사는 맛은 예전 같지 않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이런저런 일로 사이가 서먹해지고 말았다. 어른들이 외상을 하고선 검지에 침을 묻혀 밑으로 찍~ 그으며 웃던 낭만이 사라지는 오래다.

전파사 사장님처럼 성실하기만 하면 성공하는 이야기는 이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니, 오래전 일이라고는 하나 조선시대 이야기도 아니고 불과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인데도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해버렸나 싶다. 전파사 사장님 같은 사람 냄새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글 · 윤보통|a.k.a. 보통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