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팍팍했던 시절, 국수만큼 가성비가 좋은 음식은 없었다. 한 솥 가득 국수를 삶아도 드는 비용은 매우 저렴했다. 그리고 국수는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질리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니 한 끼 때우기엔 그만인 것이 국수다.
내가 어렸을 때 하숙을 쳤던 어머니는 이틀에 한 번꼴로 국수를 삶았고 나는 하숙생들 사이에 끼어 국수를 먹으며 자랐다. 어려운 살림에 바쁘게 차려야 하는 밥상이라 그저 멸치 몇 마리 던져넣고 우려낸 국물로 만든 국수지만, 시장기를 달래는 것이 목적인지라 사람들은 별 불만 없이 잘 먹었던 것 같다. 그때 국수 맛이 특별히 좋았다거나 나빴다는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맛은 평범했던 것 같다.
요즘도 간간이 ‘양푼이국수’니 ‘잔치국수’니 하는 것을 먹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먹었던 맛과는 확실히 다르다.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유독 어렸을 때 먹었던 국수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의 한쪽 끄트머리인 부산 구서 IC를 빠져나오면 부산 남포동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만난다. 7번 국도는 통일이 되면 함경북도 온성까지 연결되는 우리 국토의 척추와 같은 도로이다.
IC에서 나오면 세 갈래 길을 만나는데, 왼쪽은 7번 국도 하행선으로 곧장 가면 부산 중심부를 관통하여 서면이나 남포동으로 가게 되고, 중간으로 가면 부산대학교 방향으로 간다. 핸들을 급격하게 꺾어야 하는 오른쪽 길은 상행하는 7번 국도인데 울산, 경주, 포항을 거쳐 강릉, 속초, 고성으로 간다,
내비게이션이 나의 목적지에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내비게이션은 내가 범어사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가는 곳은 범어사가 아니라 금정산자락, 그러니까 범어사 일방 도로의 끝자락에 있는 모처이다. 이곳은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으므로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범어사로 좌표설정을 한 것이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으로, 범어사로 가는 일방 도로를 탔다면 그대로 쭉 달려 오르막길을 올랐다가 내리막이 시작하는 곳부터 긴장하면서 주변을 잘 살펴봐야 한다. 두세 번 굽이쳐 내려오면 도로가 약간 넓어지는데, 정면에 ‘모과나무 집’이라는 간판이 보인다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예각으로 좌회전하여 조금 올라오면 나의 목적지가 있다. 이번엔 10여 년 만이다.
![[단상] 금정산 범어사 언저리 천설(天雪)에서 먹었던 국수 1 cheonseol 1](https://www.thebotong.com/wp-content/uploads/2026/04/cheonseol-1.webp)
천설(天雪), 금정산 등산로에 자리하고 있는 ‘하늘의 눈’이라는 서정적인 이름을 가진 공간. 국수 한 그릇 때문에 찾아온 길이다. 다 쓰러져 가던 모습의 천설은 10여 년이 지나 다시 와서 보니 고맙게도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잘 있다.
원래 천설은 근처에서 도자기를 굽는 지인 때문에 알게 된 곳이다. 그와 몇몇 친구들이 구하기 쉬운 합판 같은 것을 가져다가 대충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지인과 처음 천설에 갔을 때 평상에서 차를 마시는데, 지인이 뜬금없이 여기 화장실은 냄새가 안 난다고 했다. 처음엔 뭔 말인가 어리둥절했는데, 알고 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도랑 위에 화장실을 만들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웃었던 적이 있다.
![[단상] 금정산 범어사 언저리 천설(天雪)에서 먹었던 국수 2 cheonseol 2](https://www.thebotong.com/wp-content/uploads/2026/04/cheonseol-2.webp)
세월은 용하게 이곳을 비껴갔다.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더군다나 천설에는 어릴 적 먹던 맛의 국수가 있다.
![[단상] 금정산 범어사 언저리 천설(天雪)에서 먹었던 국수 3 cheonseol 3](https://www.thebotong.com/wp-content/uploads/2026/04/cheonseol-3.webp)
나는 미식가가 아닌 데다가 입마저 짧은 편이라 음식 맛을 평가하는 능력은 다른 재능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이곳의 국수가 유달리 맛있다는 말은 못 하겠다. 그저 어릴 때 먹었던 국수 맛과 흡사해서 나는 좋다.
![[단상] 금정산 범어사 언저리 천설(天雪)에서 먹었던 국수 4 cheonseol 4](https://www.thebotong.com/wp-content/uploads/2026/04/cheonseol-4.webp)
맛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국수 맛은 여전했다. 모처럼 찾은 천설이라 국수만 먹기엔 섭섭해서 파전도 구워달라고 해서 같이 먹었다. 파전도 어릴 때 먹던 맛과 다르지 않다. 커다란 그릇에 가득 나오는 국수와 큼지막한 파전을 하나 먹었더니 잠이 절로 왔다.
한 줌 젖은 바람은
이젠 희미해진 옛 추억
어느 거리로 날 데리고 가네
향기로운 우리의 얘기로
흠뻑 젖은 세상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어-향기로운 추억 / 박학기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창가에 머리를 누이고 잠시 잠을 청했다. 오전 내내 비가 내려 풀잎들은 촉촉한데 잠시라도 편히 쉬라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
먼 곳에 있어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련한 어릴 때의 기억이 나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글 · 윤보통|a.k.a. 보통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