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고유가 피해지원금? 개구리는 냄비 속에서 그렇게 죽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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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출처-Pixabay]

“까톡~” 하길래 확인했더니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을 안내하는 알림톡이었다. 언제 신청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사용해야 하는지 등이 황송하게도 자상하게 적혀있었다.

현금을 살포하는 이들의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이번 명목은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다. 물가는 치솟아 5만 원 언저리 하던 쌀값이 6만 5천 원가량 하고, 5천 원가량 하던 달걀값은 1만 원을 넘어간다. 그런데도 이들은 시시때때로 돈을 풀면서, 호시탐탐 돈을 더 풀 기회만 엿본다.

개돼지 아니, 요즘은 가붕개라고 하던가, 25만 원으로 유명한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부터 시작된 각종 지원금을 이젠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 듯하니 가붕개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당연하게 여기는 느낌마저도 든다.

지난 4월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국가가 직접 갚아야 하는 채무가 1,300조 원을 넘었다던데 빚을 줄여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이렇게 펑펑 써 재껴도 되는 것일까.

어려운 살림살이에 다문 몇 푼이라도 들어오면 당장은 기분도 좋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단발성 지원금이 가계에 안정을 주진 않는다. 약간만 시야를 넓혀서 보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알고 싶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알려고 하면 보이는 서글픈 진실이다.

우선 걱정되는 점은 돈의 가치하락이다.

환율상승의 시대’라는 글에서도 말했지만, 돈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시중에 돈을 많이 푸는 것이다.

돈에 대해서는 어디보다 민감한 주식시장에서도 유통되는 주식 수가 많은 종목은 경계한다. 주식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실물경제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다. 바로 체감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쌀값, 달걀값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듯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 물가는 상대적으로 올라간다.

사실 더 걱정되는 것은 배급에 익숙해지는 풍경이다.

“아빠는 무슨 요일, 엄마는 무슨 요일…”

달력을 보며 지원금 신청하는 요일을 꼽아보는 아이를 보며 암울한 미래를 본다. 환율의 상승이니 돈의 가치하락이니 하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배급에 길들어져 가는 국민을 생각하면 어두운 미래가 내일이라도 올 것만 같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은 동물이 야생성을 잃어버려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지 못할까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짜로 주어지는 것에 익숙해지면서도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익숙해진다는 것, 길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실험이 있다. 누구나 아는 냄비 속 개구리 이야기다.

◇프리드리히 골츠 (Friedrich Goltz, 1869년): 그는 ‘영혼의 위치’를 찾기 위해 실험을 하던 중, 뇌를 제거한 개구리는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서 가만히 있었지만, 건강한 개구리는 온도가 약 25°C에 도달하자 탈출을 시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하인츠만 (Heinzmann, 1872년): 그는 물의 온도를 아주 천천히(초당 0.002°C 미만) 올리면 건강한 개구리도 도망치지 않고 죽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윌리엄 스크립처 (William Scripture, 1897년): 그의 저서 《신심리학(The New Psychology)》에서 “물을 충분히 천천히 데우면 개구리는 움직임 없이 삶아질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이 이야기를 대중화시켰다.

19세기에 있었던 이 실험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피터 셍게나 앨 고어 등이 자신의 저서에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졌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위협에 무뎌지는 인간의 심리”를 개구리의 행동에 빗대 표현한 여러 버전의 우화를 만들면서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전해서 맹장염은 병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예전엔 맹장염으로 죽는 사람도 있었다. 충수염으로도 불리는 맹장염은 거의 급성이다. 급성 맹장염은 통증을 동반하므로 병원을 찾아 어렵지 않게 치료한다. 그렇지만 통증이 심하지 않은 만성이라면 견딜만하니 병원에 가지 않고 참다가 일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데워지는 물이 담긴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통증에 익숙해진 맹장염 환자처럼, 외부의 변화에 익숙해지면 위험이 닥치더라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익숙해진다는 것이 위험하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도 아니고 배급을 기다리는 풍경이라니 정말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다.

한때,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에서 소개했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살았다. 뜬금없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이번 지원금 신청 알림톡을 받으면서 삶의 보법을 달리해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어린 시절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건너는 동안의 나의 행보는 이기적이었다, 누군가 피땀 흘려 이룬 성과를 아무런 기여도 없이 공유하고 있으니, 그래서 김수영의 시에서 뜨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매사 좋은 것이 좋다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해도 그저 들어주고 적당히 맞장구치던 모습부터 바꿀 필요를 느낀다. 이젠, 잘못된 것에 익숙해지는 모습은 단호하게 잘못을 지적해 줄 참이다.

우선 누구의 돈으로, 왜 주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서 그저 언제부터 신청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아이에게 냄비 속의 개구리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부터 말해줘야겠다.

보통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