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스타벅스 가야지” 배재고 응원 논란으로 본 우리 교육의 민낯

starbucks

2026년 6월,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응원 구호 논란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상대 팀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인터넷 밈(Meme)을 외친 학생들을 두고, 주류 언론과 여론은 ‘반사회적 혐오’라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이에 부응하듯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전례 없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에 따라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 선수들의 미래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중의 감정적 분노와 도덕적 엄숙주의의 색안경을 벗고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진짜 교육과 사회의 민낯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진짜 범죄적 혐오와 단순한 경쟁의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적 경직성,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형평성 잃은 이중잣대, 그리고 특정 이념 단체에 포섭되어 다양성을 말살하는 언론 지형의 획일성이다.

‘진짜 혐오’와 ‘경쟁 속 조롱’의 경계선

우리는 무엇이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인권의 관점에서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인종을 차별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잘못’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범죄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배재고 사건에서 쓰인 구호는 그 성질이 다르다. 치열한 스포츠 경쟁 상황에서 상대방의 기를 꺾고 자극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풍자성 밈을 가져와 던진 거친 도발, 즉 일종의 ‘트래시 토크(Trash Talk)’에 가깝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승패가 걸린 경기장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조롱과 유희는 자연스럽게 존재해 왔다. 이를 보편적 인권 침해인 약자 비하와 같은 선상에 놓고 ‘절대 악’으로 취급하는 것은 사안의 경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과잉 반응이다.

역사적 사건의 성역화와 불공정한 이중잣대

만약 어떤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세종대왕, 이순신 같은 민족적 영웅들을 가벼운 놀이처럼 조롱하고 희화화했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그들에게도 대학 입시를 막아버리는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릴 것인가? 국가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6·25 전쟁의 ‘북침설’을 주장하는 황당한 사상 유포자들조차 사상의 자유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국민적 영웅을 조롱하는 행위가 대중의 도덕적인 지탄과 훈계의 대상은 될지언정, 제도적 처벌의 영역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왜 유독 5·18과 관련된 사안에서만큼은 온 사회가 이성을 잃고 가혹한 처벌의 칼춤을 추는가? 이는 특정 사건에만 신성불가침의 성역을 부여하고, 그 선을 넘으면 법과 제도를 고무줄처럼 늘려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리는 명백한 이중잣대이자 독재적 사상 검열이다.

단일 프레임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언론 권력의 민낯

여기서 우리는 “왜 기성 언론들은 이 사안의 다각적인 면을 짚지 않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만 여론을 몰아가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언론의 획일성 배후에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나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같은 특정 성향 이념 단체들의 강한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사의 특정 사안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과 결부시켜 온 이들 단체는, 주류 프레임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반역사적’인 것으로 낙인찍으며 언론을 압박해 왔다. 보수 성향 매체들조차 ‘혐오 옹호론자’로 몰리는 것이 두려워 눈치를 보며 주류 프레임에 동조한다. 그 결과 “처벌의 형평성이 맞는가?”, “과도한 도덕적 검열이 아닌가?”라는 언론 본연의 비판적 질문들은 완전히 매장당했다. 대중의 감정적 분노에 편승해 손쉽게 도덕적 우월감을 만족시키려는 기회주의적 언론 지형이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기성 매체들의 행태는 예전에 “당신이 본 뉴스는 진실인가?”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보다에서 짚었듯, 사실의 왜곡과 조작을 일삼으며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화제를 잠재우고, ‘집중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전형적인 올드 미디어의 파렴치한 프레임 공작이다. 성공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던 영화 속 주인공 루이스처럼, 층층시하 윗분들의 눈치만 보며 본질을 왜곡하는 ‘루이스’들이 지금 야구장 아이들의 구호를 범죄적 혐오로 둔갑시켜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이들이 대중을 선동하는 방식은 또 다른 글인 ‘역사 속 괴물 괴벨스, 여전히 취약한 우리들’에서 경계했듯, 복잡한 현실의 맥락을 단 몇 초 만에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고 감정을 자극해 이성을 마비시키던 나치의 선전가 요제프 괴벨스의 악마적 소통 방식과 소름 끼치도록 닮았다. ‘스타벅스’라는 한 마디 밈에 담긴 고교생들의 유희적 조롱을 ‘절대 악’으로 단순화하고 분노를 부추기는 언론의 반복된 소음 앞에서, 대중은 복잡한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 선명한 편 가르기에 동참하며 스스로 보고 싶은 세상에 갇혀버린다.

이러한 교육계의 비극과 언론의 일방통행은 오늘날 갑자기 튀어나온 현상이 아니다. ‘학부모의 교사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교육 현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교사들 스스로가 ‘선생님’이라는 권위를 포기하면서 멍이 들어가고 있다. 교사들이 전교조 같은 노동단체를 설립하고 ‘근로자·노동자’를 자처하며 권리와 투쟁을 외칠 때 학부모들의 존경심은 사라졌고, 교단에 투신하는 스승 대신 ‘직장인’처럼 행동하는 교사들이 늘어나며 학부모 폭행이라는 막장 사태가 끊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념적 노동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괴벨스가 되어 학생들의 순수한 경쟁 무대인 야구장에까지 획일적인 징계의 철퇴를 휘두르는 서글픈 지경에 이르렀다. ‘자유와 권리’는 쟁취하는 것이지만 ‘존경’은 주어지는 것임을 망각한 대가다.

나가며

배재고 응원 논란이 보여준 우리 교육의 진짜 민낯은 학생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조롱조차 품어내지 못하는 사회적 경직성, 특정 영역에만 유독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중잣대, 그리고 이념 단체의 입김에 휘둘려 다양성을 말살하고 처벌 만능주의를 부추기는 언론 환경이 진짜 민낯이다.

잘못이 있다면 비판하고 유연하게 교육적으로 풀어가면 될 일이다. 단 하나의 획일적인 도덕적 기준을 강요하며 학생들의 미래를 제물로 삼는 방식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자율성과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이다. 이번 사건은 공포와 눈치를 가르치는 경직된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의 미래를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증거로 기억될 것이다.

보통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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