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노라면 좋은 날도 궂은날도 있다지만 요즘처럼 힘들기만 한 날들이 있을까. 과거 IMF 외환위기 시절이 한국 경제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시기였다면, 지금은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라는 잔인한 ‘3고(高) 현상’이 서민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또 다른 암흑기다. 이렇게 힘들 때 국민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이 스포츠였다.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 메이저리그의 박찬호가 그랬고, LPGA의 박세리가 그랬다. 마침, 지금은 전 국민의 축제라는 월드컵 시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월드컵은 국민에게 위로가 아니라 더 큰 스트레스를 던져주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1승 2패, 승점 3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48개국으로 확대되어 문턱이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음에도, 32개국을 뽑는 조별리그조차 통과하지 못한 이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국민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 참담한 결과는 단순히 선수들의 기량 탓이 아니라 애초에 공정하지 못한 절차로 밀어붙인 축구협회의 독단적인 감독 선임으로 인한 예고된 참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로의 축제여야 했던 월드컵은, 축구협회가 연출한 잔혹극이 되었다.
사실 이미 세상이 다 아는 불공정한 감독 선임 과정을 굳이 다시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과정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축구협회라는 조직의 ‘기득권 카르텔’이다.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 정도로 온 국민이 그토록 반대하고, 수많은 축구인이 절차적 정당성을 외쳤음에도 협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 국민의 염원이나 상식적인 절차 따위는 자신들의 탄탄한 성벽을 뒤흔들 수 없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여론을 비웃듯 밀어붙인 독단적인 감독 선임은, 대한민국 축구가 국민의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전유물임을 증명한 오만한 선언이었다.
더 참담한 것은, 이 ‘역대급 무능’이 이미 12년 전에 완벽하게 증명되었던 실패작이라는 점이다. 과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처참한 실패를 겪고 경질되었던 인물을, 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지금 다시 사령탑에 앉혔다. 발전은커녕 과거의 실패 공식만을 고스란히 복습한 감독과, 그 실패한 카드를 ‘우리 사람’이라는 이유로 다시 꺼내 든 축구협회의 안일함은 결국 예고된 참사를 낳았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경력직 실패자’의 재고용. 이것이야말로 축협의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 국민의 눈높이를 얼마나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인한 증거다.
“대한민국 축구에 내 마지막 축구 인생을 봉사하겠다.” 선임 과정의 특혜 논란 속에서 감독이 직접 던진 이 비장한 한마디는, 그의 연봉 서류가 공개되는 순간 파렴치한 위선으로 전락했다. 월드컵 출전국 사령탑 중 16위, 금액으로는 약 38억 원에 달하는 거액. 심지어 철저한 시스템으로 대표팀을 다져놓은 일본 감독 연봉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외신에 의해 그의 연봉이 공개되자 축협에선 금액이 다르다며 부인했지만 수십억 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상에 수십억 원의 거액을 주머니에 차곡차곡 챙기면서 이를 ‘희생’과 ‘봉사’라 포장하는 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일하면서도 감히 ‘봉사’라는 거창한 말을 쓰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그의 가벼운 혀 놀림은 지독한 모욕이었다. 국민의 눈높이를 조롱한 이 기만적인 ‘셀프 봉사 마케팅’이야말로 이번 잔혹극에서 가장 관객들을 분노케 한 블랙코미디다.
흔히 현대 축구의 명장들은 치밀한 전술로 승부하는 ‘전술가형’이거나, 스타 선수들의 자존심을 어루만지며 원팀을 만드는 ‘매니저형’으로 나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감독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시대착오적인 ‘규율’과 ‘군기’로 표현되는 낡은 ‘정신력’뿐이다. 세계적인 전술 트렌드를 연구하는 대신 선수들의 머릿속을 통제하려 들고, 강압적인 분위기로 단기적인 경기 결과를 쥐어짜 내던 과거의 성공 방식에 여전히 갇혀 있다. 자율과 창의성이 숨 쉬어야 할 운동장에 군대식 상명하복을 이식하려 한 시도 자체가 이미 시대와의 불화이자 실패의 서막이었다.
리더십의 부재는 그릇된 명예욕과 결합하며 더욱 기괴한 형태로 나타났다. 현재 대표팀에는 감독 자신의 현역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월드 스타들이 즐비하다. 리더로서 마땅히 이들의 재능을 빛내줄 무대를 만들어줘야 했으나, 비대해진 명예욕으로 가득 찬 감독은 오히려 이들의 아우라를 깎아내리기에 바빠 보였다. 일각에서 “감독이 선수를 질투하는 게 아니냐”는 냉소 섞인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스타 선수의 영향력을 시기하듯 그들의 플레이를 제약하고, 빛나는 재능들을 전술적 유기성 없이 그저 모래알처럼 흩어놓았다. 리더의 얄팍한 자존심과 질투심이 황금 세대라 불리는 선수들의 재능을 난도질하는 사이, 경기장은 서서히 잔혹한 학살극의 무대로 변해갔다.
서민들은 하루하루가 서슬 퍼런 생존의 전쟁터에서 땀 흘리며 공정한 기회를 갈구한다. 그 고단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월드컵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줄 유일한 비상구였다. 그러나 축구협회와 감독은 자신들의 공고한 성벽 안에서 실패한 권력과 수십억의 이권을 나눠 가졌고, 그 오만의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국민에게 위로가 되어야 했던 월드컵은 그렇게 불공정과 무능이 연출한 잔혹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언제까지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가. 이 잔혹극의 막을 내리기 위해, 이제는 무대 뒤의 연출가들에게 책임을 물을 때다.
라고 쓰고 있는데, 방금 대통령이란 사람이 숟가락을 얹었다. 어째 대통령이 이런 문제까지 끼는가 싶어 황당하기만 하다. 하여간 껴야 할 때는 안 끼고 안 껴야 할 때는 바득바득 끼니 그것도 참 재주다 싶다. 이미 시작한 글이라 폐기하기는 그렇고 해서 이쯤에서 마무리하지만, 뒷맛이 참 고약 타.
보통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