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베란다의 화분을 비우며

지난 주말, 결국 큰맘 먹고 베란다의 화분들을 전부 정리했다. 좋게 말하면 자연으로 돌려보낸 것이고, 실상은 시들어 가는 모습을 더는 감당하지 못해 내다 버린 것에 가까웠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남동향이다. 사람이 살기에는 무던한 환경이라, 다들 왜 그리 남향만 고집하나 싶었다. 그런데 화초를 키우며 그 이유를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침 한때 반짝 머물다 가는 볕은 사람에게는 충분했지만, 식물이 자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처음의 파릇한 생기를 잃고 누렇게 죽어 가는 것이 온전히 일조량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게는 식물을 돌보는 소질이 영 없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말라가는 이파리를 가위로 잘라내는 일 자체가 내게는 은근한 스트레스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화분을 완전히 비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가위와 물뿌리개를 들고 베란다를 서성일 때마다 무심히 툭 날아들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문밖에 나가기만 하면 사방이 산이고 꽃인데, 뭐 하러 집에까지 들여놔서 고생이냐. 흙 있으면 벌레만 꼬이지.”

지당한 말씀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사실이 더 치명적인 법이다. 속으로는 이미 지쳐 가면서도, 정성 들인 화분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늘 이게 내 나름의 ‘힐링’이라며 날을 세웠다. 진짜 자연은 밖에 널려 있다며 혀를 차는 아버지에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탓에 부린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작은 화분 몇 개를 두고 참 어지간히도 다퉜다. 부족한 일조량과 서툰 재주 앞에서는 낭만도 실용도 허망한 것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도시 생활에 지칠 때 식물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는 친구들의 유행을 유일한 방패처럼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동물은 아프면 짖거나 울기라도 하지, 식물은 소리 없이 조용히 죽어갔다. 영문도 모른 채 머리를 싸매야 했다.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었고, 적게 주면 잎이 말랐다. 이것저것 지켜도 잎은 끝내 누렇게 떴다. ‘애완 돌(Pet Rock)’이 괜히 유행한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돌보고 있다는 기분은 내고 싶었던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베란다에는 그런 애틋함 대신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 들이닥쳤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 말씀대로 작은 날벌레들이 집 안을 날아다녔다. 때마침 여름이었다. 형광등 불빛으로 돌진하는 초록빛의 단단한 이름 모를 벌레들. 몇 마리나 잡았을까.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매일 시드는 식물을 신경 쓰는 일에서도, 집 안을 떠도는 벌레들에 대한 책임감에서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 길로 화분들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단지 뒤편은 산의 끝자락과 곧장 이어진다. 그곳 화단에 화분을 뒤집어 흙을 털어내고, 반쯤 시든 식물들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무거운 화분들을 비우고 일어서는데 묘하게 속이 시원했다.

산자락 아래 흩어진 식물들을 바라보니 아버지의 말이 뜻밖의 의미로 다가왔다.

베란다라는 좁은 공간에서 화분은 내 시야의 전부였다. 식물들이 가득한 그곳에서는 누렇게 뜬 이파리 한 장도 유난히 선명했다. 잘 키우지 못한다는 자책 역시 그만큼 쉽게 마음을 채웠다. 하지만 큰 나무들이 우거진 산속에 그것들을 내려놓고 보니, 그토록 크던 화분들도 거대한 자연 속에서는 흔적처럼 작아졌다. 한때 내 눈을 가득 채웠던 그 푸르름은, 그저 넓은 풍경을 이루는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의 고민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방 안에 틀어박혀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걱정은 시야를 가득 메운다. 그 안에서는 무엇 하나 제 크기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면, 해결된 것은 없어도 마음만큼은 조금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조금 전까지 세상을 뒤덮던 불안도 어느새 제 크기를 되찾는다.

어쩌면 나는 작은 식물 하나라도 내 곁에 두고 돌보며 삶의 불안을 달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붙잡는 일만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놓아둘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화분을 모두 돌려보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초록을 좋아한다. 머지않아 소유욕을 이기지 못해 또 화분 하나를 집으로 들여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버지와 또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겠지. 그래도 어쩌면 그때의 아버지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화분을 위해 베란다에서 해가 가장 잘 드는 자리를 슬그머니 비워두실 것이다.

앞으로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지는 날이 오면, 나는 이번 화분 정리를 떠올릴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드넓은 하늘과 산의 능선을 바라볼 것이다. 언젠가 내 화초들이 그랬듯, 내 걱정도 이 넓은 세상 어디쯤 흩어져 더는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윤별|Edit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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