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기회주의자의 습성, “풀은 바람이 불기 전 먼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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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출처-Pixsbay]

소설을 쓰고 칼럼도 쓰는 김규나 작가가 ‘5·18 왜곡 처벌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함이 옳지만, 세상에 그런 법이 있고, 그런 법을 위반했다고 하여 조사나 수사로 끝나지 않고 재판까지 받는다니 놀랍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한국사 일타 강사로 유명한 전한길 대표가 수갑을 차고 구속 심사를 받으러 가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그전에는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이 긴급체포 되어 수갑을 차기도 했다. 둘 다 경찰이 한 행위들이다. 요즘은 법을 밥처럼 만들어 내니 새로운 법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피의자 인권이 중요하다면서 형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은 포토 라인에도 세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 혜택을 조국이 누린 것으로 알고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법이나 제도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법이나 제도도 운영하는 사람이 엉망이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런저런 칼럼 등에서 한 번씩 인용되어 잘 알려진 “풀은 바람이 불기 전 먼저 눕는다”라는 표현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함께 김수영의 대표적인 시 ‘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자들의 행동을 비유할 때 이만큼 좋은 말도 없다.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법 또는 제도를 운용할 때 항상 사달이 생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이 나폴레옹과 프랑스 언론이다.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에 유배되었던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해 황제로 복위하는 과정을 보도한 프랑스 언론의 모습은 바람이 불기 전 먼저 눕는 풀을 연상시킨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언론은 시민혁명을 옹호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집권하여 황제가 되자 언론은 그를 지지하며 반혁명 세력으로 돌아선다. 그러다 나폴레옹이 전쟁에 패하여 엘바섬으로 유배를 가자 다시 태도를 바꾼다.

압권은 나폴레옹의 파리 입성 과정을 보도하는 보도 행태이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하자 나폴레옹을 괴물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파리로 다가오자, 괴물에서 나폴레옹으로 바뀐다. 파리에 가까워지자, 그냥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 장군으로, 장군에서 황제로, 급기야 이름을 빼고 황제 폐하라고 호칭을 바꾼다.

“괴물 탈출하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연안에 도착! → 나폴레옹 장군 파리 근교에 이르다. → 황제, 파리 시에 이르다! → 황제 폐하 입성!”

이러한 일련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바람이 불어오자 드러누운 풀과 다를 것이 없다. 프랑스, 언론이 참 부끄럽겠다. 우리나라 언론도 참 부끄러운데.

우리나라 언론은 참 노골적이다. 우리 언론은 좌파라는 단어는 극도로 꺼리면서 우파라는 단어는 아주 쉽게 쓴다. ‘극좌’는 금기어처럼 여기면서 ‘극우’는 딱지처럼 붙인다. 시민단체를 표현할 때도 좌파 성향이면 그냥 시민단체라 하면서 우파 성향이면 꼭 보수단체라고 한다. 그 속이 너무 훤히 보여 부끄럽기 그지없다. 언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어오자, 경찰이 누웠다. 검찰도 눕고, 법원도 누웠다. ‘이현령비현령’으로 누웠다.

“이현령비현령”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뜻으로 법의 성질을 잘 나타내주는 문장이다. 법을 다루는 경찰이나 검찰 심지어 법원은 이를 활용하여 권력의 눈에 들고 싶을 때 사용한다. 죄의 유무를 떠나 권력의 눈짓이나 입김에 따라 사건을 이현령비현령 처리할 수 있으니, 그보다 좋을 수 없다. 바람이 웃는다.

보통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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