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세상에 공짜는 없다 ─ 쓰레기봉투 선물 받은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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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시끄럽던 아파트단지 분위기가 가라앉나 싶었는데 다시 웅성거린다. 그동안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을 앞두고 주민 동의율이 높아야 유리하다며 동의서 받으러 다니는 열성 주민들 때문에 온 아파트가 들썩였다. 그랬다가 이웃 아파트가 선도지구로 선정된 것을 끝으로 들썩임이 끝나나 했더니, 바로 윗집이 선도지구 탈락의 울분을 내부 리모델링으로 풀려는지 화장실과 베란다 샷시(sash)를 교체하는 공사를 벌였다.

그동안 윗집 부부는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 추진위원회‘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었다.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재건축 선도지구로 지정되면 사업 속도가 빨라져 10년 걸릴 사업을 5~6년 내로 단축할 수 있고, 용적률 상향 등의 파격적인 규제 완화 혜택을 받아서 자산 가치가 상승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선도지구로 선정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동의서에 도장을 찍을 것을 호소했었다.

눈물겨운 그들의 노력도 헛되이 선도지구 선정에서 탈락하자 은근히 걱정됐다. 그들의 기대와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웠는지를 봤었기 때문에 속병이 생겼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일반 주택지와 달리 아파트 생활은 이웃의 얼굴도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만 겨우 알 정도로 제한적이다. 그런데 윗집은 처음 이사 올 때부터 달랐다. 그들은 아래윗집 옆집에 떡을 돌렸다. 강한 전라도 사투리로 인사를 하는데 받은 떡을 보니 옛날 기억이 났다.

옛날엔 이사를 하거나 가게를 개업하면 떡을 해서 이웃에 돌렸었다. 거의 사라진 풍습인데 도시에서 그런 모습을 보니 신선하면서 그들에게 호감이 갔다. 그렇게 안면을 튼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나 길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이웃들도 그들을 전라도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며 모두가 좋아하는 이웃이 됐다.

선정지구 탈락이 되고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 걱정을 끼치던 윗집 아줌마가 갑자기 우리 집에 와서 쓰레기봉투 한 묶음(5개)을 내밀었다.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좀 시끄럽더라도 이해를 바란다는 거였다. 뭐 그런 일로 이런 것을 가져오냐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아파트 생활하면 간혹 이웃에서 실내 공사를 하는지라 웬만하면 다들 그냥 넘어간다. 그들은 폐를 끼친다고 여겼는지 그렇게 성의(?)를 보였다.

다음날부터 고통이 시작됐다. 분명 화장실과 베란다 샷시교체 공사만 한다고 했는데 소음은 예상한 것과 달랐다. 사실 화장실의 타일공사는 첫날 철거할 때만 소음이 좀 발생할 뿐 그냥 붙일 땐 시끄러울 일이 없다. 샷시도 마찬가지로 그냥 기존 것을 뜯어내고 새것을 끼우는 작업이라 그렇게 소란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온 바닥을 뜯어내는지 콘크리트 파쇄기나 해머 소리가 온 건물을 진동시킨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파쇄기나 해머 드릴 소리는 진동을 유발해서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작업을 며칠이나 하니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이런 공사는 아침 일찍이나 늦게는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번 공사는 좀 달랐다. 조금 일찍 시작하고 늦게까지 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사는 아파트는 다른 곳과 달리 유난히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이 많은 곳인데 이번 공사와 관련해서는 일절 방송이 없었다. 평소 층간소음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바로 주의를 당부하는 방송이 실시간으로 나오곤 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쓰레기봉투 때문인 것 같다. 관리사무소에도 쓰레기봉투를 돌렸구나.

“옛날,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다. 그는 좋은 왕이 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왕궁 도서관에 들렀다. 왕은 도서관의 엄청 많은 책을 보고 언제 이 책들을 읽나 싶어 신하들에게 여기 있는 모든 책을 요약하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머리를 짜내어 모든 책을 10권으로 요약하여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 10권도 많다고 여겨 더 줄이라고 했다. 신하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요약하고 요약하여 단 1권으로 줄였다. 그러나 왕은 그 1권의 책도 읽기 힘들어 한 줄로 요약하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당대 석학들을 모두 동원하여 요약하기 시작하여 결국 한 줄로 요약했다. 그들이 왕에게 바친 단 1줄의 요약 글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문장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이 삽화는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이라면 교훈이라 할 수 있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뜬금없이 이런 삽화를 소개하는 것은 뇌물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물론 쓰레기봉투 5장을 뇌물이라 단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한 의미의 선물이기엔 명분이 없는 데다,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 제공한 물품인 것은 확실하니 굳이 정의하자면 뇌물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뇌물의 부작용을 설명하는 사례로 얘기할 뿐이다. 삽화에 나오듯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뭔가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선물 혹은 성의라는 이름의 뇌물을 제공한다.

내가 어렸을 때, 십문칠(10문7)이란 말이 유행했다. 신발의 치수인데, 가장 보편적인 크기가 십문칠이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십문칠 사이즈의 고무신을 유권자들에게 뿌렸다. 신발을 받은 사람들은 먹은 죄가 있어 투표할 때 찍어줬다. 받고도 안 찍어줄 법도 한데 당시 유권자들이 그 정도로 영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예전엔 교통경찰 1년만 하면 집 한 채 산다는 말이 있었다. 교통단속을 할 때 오천 원권이나 만 원권 지폐를 접어서 면허증 뒤에 숨긴 채 경찰에게 건네면 경찰은 면허증을 보는 척하며 돈을 챙기고는 “안전운전 하십시오”하며 면허증을 다시 돌려준다. 위반했더라도 돈이 위력을 발휘하여 단속을 무사히 넘어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십문칠 고무신도 뇌물이고, 운전면허증 뒤에 꿍친 지폐도 뇌물이다. 이런 뇌물은 대가를 바라기 때문에 결국 제공받은 사람은 편의를 봐줘야 한다. 나는 쓰레기봉투 5장을 받고는 도를 넘는 공사소음에도 그저 끙끙 앓을 뿐 한마디도 못 했다. 뒤에 알고 보니 단순히 화장실과 베란다 샷시를 교체하는 공사를 한 것이 아니라 신축 아파트에서나 하는 ’구경하는 집‘ 수준으로 실내 인테리어를 싹 뜯어고친 것이라고 했다.

쓰레기봉투가 없었더라도 이웃 간에 그 정도의 일은 묻고 넘어갈 수 있으므로 내가 소음에 고생한 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뇌물과 인간 심리의 관계이다. 실제 쓰레기봉투 5장을 받고 보니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비슷한 경우라면 대놓고 항의하거나 관리사무소에 전화하진 않더라도 꿍얼거리기라도 했을 텐데 그런 마음이 아예 들지 않았다.

뇌물을 받으면 생각의 자유를 구속당한다. 뇌물을 제공하는 사람은 그런 점을 노린다.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5장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구속하는데 아무래도 선물의 가치에 비례해서 구속력이 강해지지 않을까. 이번에 좋은 공부를 했다.

돌이켜보면 사람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꼭 큰돈이나 노골적인 부탁만은 아니다. 작은 호의라도 상대가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이후의 판단을 망설이게 한다면 관계에는 이미 부담이 생긴다.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는 “인간관계 망치는 3가지 행동, 사람들이 멀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를 참고하면 되겠다.

보통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