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학부모의 교사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teacher
스승의 날, 제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선생님 [AI이미지]

최근,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학부모에게 목이 졸리고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웠을 것이며, 그런 일을 목격한 어린 학생들은 또 얼마나 놀랐을까.

어떻게 학부모에게 폭행당하는 교사들에 대한 소식이 끊어지지 않는지 우려스럽다. 쉬쉬하며 덮어버린 사건도 있을 법하니 어쩌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교육계가 몸살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이런 소식이 뉴스 형식으로 알려지고 화제가 된다는 점에서 아직은 이례적인 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지만, 왜 자꾸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잊힐 만하면 발생하는 학부모의 교사 폭행 사건 그 원인이 뭘까.

보통 교육계에 몸을 바쳐 교사가 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을 ‘교단에 투신한다.’라고 표현한다. 교단이란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 즉 교육 현장이고, 투신은 몸을 던진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교직이란 일반 직종과 달리 자신의 몸을 던지는 고귀한 일이란 의미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투신하는 마음으로 교단에 서는 교사들이 몇이나 있을까.

예전엔 교사라는 단어도 송구스러워서 잘 못 썼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무조건 선생님이었다. 학교 선생님도 선생님, 과외선생님도 선생님. 하여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었다. 가르치는 일은 그만큼 남다른 영역이었다.

선생님은 하늘과 같아서 함부로 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책에서도 군사부일체니 어쩌니 하면서 스승은 임금이나 부모님과 함께 우러러 모시고 따라야 할 분으로 묘사했는데, 보통 선생님은 스승의 역할도 했으므로 선생님 역시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학부모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고, 부모가 그러니 학생들 역시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 시절 학부모와 선생님의 대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화가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인간만 만들어 주십시오.”라거나, “그저 죽이든 살리든 선생님 뜻대로 하십시오.”와 같이 부모님이 선생님께 드리는 간청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 들으면 기함할 말이겠으나 엄연히 있었던 일로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농촌 드라마로 유명한 전원일기 408회 <시절이 다르네요>에는 영남이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가정방문을 온다는 소식에 영남이 엄마(고두심)이 집 안을 대청소하며 긴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에피소드는 당시 학부모들의 ‘가정방문 문화’를 잘 묘사한 장면으로써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실제 그런 일이 없으면 드라마로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교사들이 예전처럼 학생들이나 학부모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을까? 아니라면 왜 그렇게 됐을까. 혹자는 학부모들의 배움이 교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교사의 위상이 낮아졌다고도 하지만, 이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전원일기의 영남이 엄마는 고학력자다. 당시 분위기를 돌아보면 배운 사람일수록 선생님을 더 존중했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무엇이 교사들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교사들을 만만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일까. 폭력을 행사한 그 학부모는 비상식적인 사람이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함량이 미달이니 논외다. 우선 유추해 볼 수 있는 여러 이유 가운데 분명한 하나는 교사들이 자초했다는 점이다.

교사들이 전교조와 같은 노동단체를 설립하면서 스스로가 선생님이길 포기하고 근로자임을 선언함으로써 학부모와의 불미스러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이번 스승의 날에 ‘실천교육교사모임’이라는 교사 단체에서는 ‘스승의 날’이 교사 개인에 대한 감사와 권위를 강조하는 날로 느껴진다면서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꿔 달라고 했다. 교사에게 감사를 하거나 권위가 있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묻고 싶다.

현재 노동계에서는 근로자라는 표현보다 노동자로 불러주길 원하는 모양이던데, 아마 선생님에서 근로자도 아닌 노동자로 다시 변신하게 되면 학부모에게 어떻게 비칠지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학부모의 눈에 선생님이 김 교사, 이 근로자, 박 노동자로 보이니 존경심이 생겨날 리가 없다. 선생님이라 불려야 할 교사의 입에서 ‘권리’, ‘투쟁’, ‘쟁취’와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오니 교사들이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것이다.

자식을 학생으로 키워봤던 학부모였던 입장에서 고백하건대, 전교조 집회를 본 이후 교사가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노동자로 보이면서 존경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2008년엔 민노총 간부였던 김모 씨가 전교조 소속 여성 교사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으로 기소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교사를 선생님이 아닌 일반 노동자로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같은 부류이니 어울렸을 테고,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이유다.

이러한 생각은 일반 근로자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를 상대적으로 더 높게 인식한 탓이다. 그러니 이런 인식의 변화는 선생님, 즉 교사의 격이 그만큼 낮아졌음을 나타낸다.

교사들이 왜 그렇게 선생님 대신 근로자, 노동자로 불리고자 애를 쓰는지 당최 이해가 안 된다. 교단에 투신한 것이 아니라, 교직으로 취업한 직장인처럼 행동하는 교사를 보면 옛 은사님에게 쥐어 터지던 시절이 그립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해도 학창 시절 은사님을 만나면 그 자리가 어디든 큰절을 올렸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감정일 것이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던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다른 권리를 얻고자 했던 행위의 결과가 오늘날 불미스러운 일을 만든 하나의 이유는 아닐까? 존경하는 대상이었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교사가 전교조를 하건, 무엇을 하건, 선택은 교사 자신이 하는 것이겠으나 ‘자유’나 ‘권리’는 쟁취하는 것이지만, 존경은 쟁취가 아니라 주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교단은 존경받아야 할 선생님들의 자리이지 쟁취하고 싸우는 노동자들의 자리는 아니다.

보통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