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대가 세대인지라 나는 잘 모르지만, 요즘 리센느라는 걸그룹의 ‘원이’라는 멤버가 화제라고 한다. 어두운 방을 보고 “무섭노”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다가 촉발된 논란이다. 이 말이 소위 ‘일베식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논란은 심각한 논리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발언이 진짜 문제가 되려면 선행되어야 할 순서가 있다. 우선 “리센느의 ’무섭노‘라는 말이 일베 용어이므로 잘못”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일베는 나쁜 곳‘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일베가 과거 우리 사회에 남긴 혐오와 갈등의 흔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가 오직 ‘일베’에만 공정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가는 짚어볼 문제다. 타인을 혐오하고 범죄적 행태를 일삼는 커뮤니티들이 진영을 막론하고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유독 일베라는 이름 하나에만 온 사회가 발작적으로 반응하는 현상은 기이하기 짝이 없다.
결국 이는 특정 진영이 자신들과 결을 달리하는 세력을 손쉽게 무력화하기 위해, ‘일베는 나쁜 곳’이라는 낙인을 찍어 대중을 가스라이팅해 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행태는 “역사 속 괴물 괴벨스, 여전히 취약한 우리들”에서 언급했던 ‘삼인성호(세 사람이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 식 낙인찍기로 선동에 능한 집단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일베몰이 하지 말라”고 반발하는 자체가 ‘일베는 나쁜 곳‘이라는 이들의 가스라이팅에 넘어갔다는 뜻이다. 이렇게 일반 대중은 알면서 속고, 몰라서 속고, 그렇게 매번 속는다.
즉, 이 논란은 일베에 대한 상식적인 사회적 합의가 없는,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설계한 정치적 낙인찍기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러므로 리센느의 ’무섭노‘가 일베식 용어라서 잘못이라는 말은 섣부른 주장이다. 일베에 대해서는 한 세대쯤 지나면 제대로 된 역사적 판단이 나오지 않을까.
그다음으로 따져봐야 할 것은 과연 “무섭노”라는 말이 저들이 주장하는 일베만의 전유물이 맞는가 하는 사실관계다.
‘~노’라는 사투리는 경남 지역에서 옛날 옛적부터 사용해 온 고유의 언어다. 그 시절엔 일베가 없었기 때문에 ‘~노’라는 말이 일베에서 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투리가 일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베가 이 사투리를 흉내 냈다고 해야 말이 된다.
아마 ‘무섭노’를 지역 사투리가 아닌 일베 용어로 몰아세운 이들은, “머 이리” 또는 “와 이리”와 같은 의문사가 생략된 맥락을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략된 상태로만 들으면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니까. 요즘은 말을 짧게 하는 것이 유행이라 “와 이리 무섭노”를 줄여 그냥 “무섭노”라고도 하는데, 이는 경상도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말 줄임 현상에 대해서는 ‘이 시대의 문법, 과도한 말 줄임과 신조어에 대하여‘를 통해 안타까움을 토로한 바 있다. ‘국중박’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줄여놓은 말이란 것을 알고서였다.
그러니까 경상도 사투리는 일베의 소유물이 아니며, 리센느의 “무섭노”는 그저 무서워서 무섭다고 한 사투리일 뿐이다.
요즘은 지역 사투리가 많이 사라지는 추세라 단어는 없어지고 억양만 남아 지역색을 보여준다. 쇠때(열쇠), 정지(부엌), 오봉(쟁반), 빼다지(서랍)와 같은 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는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경남의 ‘~노’, 경북의 ‘~껴’, 전라도의 ‘~께’, 충청도의 ‘~유’는 종결 어미로서 그 자체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떤 이들은 교과서적인 문법 잣대를 들이대며 ‘~노’를 의문사가 있는 의문문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짓는다. 하지만 언어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실제 경상도 사람들의 구어에서는 혼잣말을 하거나, 감탄을 하거나, 어조를 부드럽게 맺을 때도 ‘아이고, 와 이리 덥노’, ‘우째 그리 이쁘노’처럼 자연스럽게 확장되어 쓰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엔 시시콜콜 가르치려 드는 세력이 판을 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딱 정해놓고 세뇌하다가, 자신들의 주장이 탄핵당하면 어느새 ‘옳음/그름’을 ‘같음/다름’으로 둔갑시켜 “그른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고 어거지를 쓴다. ‘옳다/그르다’와 ‘맞다/틀리다’, ‘같다/다르다’를 교묘하게 섞어 놓고 자신들 유리한 대로 갖다 붙이는 거다.
국민을 빙다리 핫바지로 아는지, 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의 차이를 모를까. 얼마 전엔 “스타벅스 가야지”로 말썽이더니 이번엔 “무섭노”로 훈장질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1970~8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은 기억할 것이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가 외래어와 대중문화를 엄격히 통제했다는 사실을. 당시 정부는 “방송에서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고 고운 우리말을 살려 써야 한다”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많은 가수와 밴드들이 영어 이름을 버리고 강제로 한글 이름을 써야만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정책이지만, 당시엔 그저 고운 우리말 사용에만 초점을 맞췄던, 좋게 말해 좀 덜 떨어진 정책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언어 검열과 낙인찍기는 그때보다 훨씬 악의적이다. 사투리의 오랜 역사와 맥락은 싹둑 잘라버린 채, 자신들의 얄팍한 기준에 맞춰 타인에게 낙인을 찍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칼날로 쓰기 때문이다. 그저 나쁜 이미지를 씌우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낙인찍기에 혈안이 된 이 기이한 언어의 주객전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다음번엔 우리 중 누구의 어떤 평범한 일상어가 검열의 제물이 될지 모를 일이다.
보통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