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를 떠돌며 사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익숙했던 도시를 떠나 작은 중고 밴에서 생활하며 낯선 길 위의 세상을 떠돈다. 길 위를 떠도는 사람은 여자만이 아니다. 저마다의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길 위를 떠돌며 노매드(유목민) 생활을 하고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 이야기다.
노매드랜드는 제시카 브루더의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라는 논픽션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반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던데 흥행성적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좋은 평을 들었을 것 같다.
즐기는 문화생활이라곤 음악을 듣거나 책 읽기가 전부였던 내가 OTT 덕분에 영화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러다 감상하게 된 영화가 노매드랜드다. 그동안 꽤 많은 영화를 감상했지만,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는 영화는 ‘히든 피겨스’를 비롯해서 손에 꼽을 정도이다. 감상할 목록만 많을 뿐 풍요 속의 빈곤이라 흥미를 끄는 영화를 찾긴 힘들다. 그러다가 별 기대 없이 감상했던 영화가 노매드랜드다.
기대 없이 봤던 노매드랜드는 여운이 길었다. 그래서 다시 보고, 또 보고 해서 세 번을 봤다. 그렇게 감상한 노매드랜드는 내가 잠시만 방심하면 깊은 생각의 늪 속으로 빠뜨렸다. 내가 노매드랜드를 잊지 못한 이유는 ‘펀’이라는 사람이 떠도는 길 위의 삶이다. 길은 어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영화가 시작되기 전,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있던 US 석고의 공장이 석고보드 수요 감소로 인해 2011년 폐업했고, 공장이 있던 곳은 우편 번호마저 말소되었다는 설명이 텍스트로 나온다.
펀은 한때 엠파이어에서 남편 보와 살고 있었다. 보는 석고를 캐는 광부였고, 펀은 US 석고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US 석고 공장이 문을 닫으며 공장에 수입을 의존하던 엠파이어는 몰락해 버렸다. 직장도 연고도 없이 홀로 남게 된 펀은 밴 한 대에 몸을 의지해 떠도는 노매드가 된다.
영화는 펀이 차에 실을만한 짐을 제외한 모든 살림살이를 창고에 맡긴 뒤 밴을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은 하고 싶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없던 펀은 한 캠핑장에 밴을 맡긴 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계절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펀은 캠핑장에서 만난 노매드 린다로부터 밥 웰스라는 노매드의 유튜브 채널을 소개받고 그를 만날 것을 권유받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아마존 물류센터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펀은 밥 웰스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밥 웰스를 만난 펀은 그곳의 노매드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윽고 밥과 다른 노매드들은 모두 떠나고, 펀과 다른 노매드 스웽키만 남는다. 스웽키는 자신이 폐에 있는 암이 뇌까지 전이된 시한부 인생이라고 밝히며 병원에서 죽느니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죽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날 스웽키마저 떠나고, 펀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난다.
펀은 한 캠핑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일을 하던 도중 데이브라는 다른 노매드를 만나 친해진다. 데이브는 펀이 자기가 곧 일할 식당에서 같이 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어느 날, 데이브의 아들이 식당에 찾아와 자기 아내가 임신했다며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데이브는 고민하다가 아들과 같이 가기로 하고, 펀은 예정대로 다른 지역의 비트 농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떠난다.
펀은 비트 농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펀의 밴이 심하게 고장이 나고 새 차를 사는 것이 나을 정도로 수리비가 많이 나오자, 펀은 정든 밴을 버리지 못하고 수리비를 빌리기 위해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언니 집에 간다. 언니는 펀에게 같이 살자고 하지만 펀은 정중히 사양하고 돈만 가지고 나온다.
펀은 떠돌다 아들의 집에 정착한 데이브의 초대를 받는다. 데이브는 타고 다니던 밴을 마당에 펑크 난 채 방치할 정도로 노매드 생활을 접은 상태였다. 데이브는 펀에게 아들 내외도 허락했으니, 자신들과 함께 살자고 권하지만, 펀은 이미 편한 침대에서 자다가 문득 잠이 깨서 다시 밴에서 잠에 들 정도로 노매드 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다시 펀은 길을 떠나 영화 첫 장면에 나왔던 창고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펀은 창고에 남아 있던 물건을 모두 처분한 채 다시 노매드랜드로 간다. 그 사이에 스웽키는 자신이 원하던 데로 여행 중에 세상을 떠났고, 펀과 밥 웰스 그리고 다른 노매드들은 모닥불 앞에서 스웽키의 삶을 기린다.
펀은 밥 웰스에게 죽은 남편 보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자 밥 웰스는 자신도 5년 전에 아들이 자살한 이후 노매드의 삶을 택했다면서, 길 위에서는 영원한 작별이 없으며 누구나 다시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펀은 엠파이어로 돌아와서 예전에 자신이 다녔던 공장과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엠파이어 가운데에 있던 자신이 살던 집을 둘러본다. 이후 네바다의 사막과 그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밴을 비추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우연히 본 영화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몇 번씩이나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영화 속의 노매드들처럼 가슴 시린 사연을 하나 정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라던 ‘나쓰메 쏘세키’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때로는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노매드라는 말. ‘Nomad’는 유목민이나 정해진 집 없이 떠돌며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한국에서 ‘노마드’로 발음하기도 한다. 그래서 ‘디지털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아마 돈을 벌면서 여행도 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노매드랜드는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니다. 유람 삼아 떠난 길도 오래되면 고된 법인데, 기간이 정해진 차박도 아니고 길 위를 떠도는 삶은 얼마나 지난할까.
차에서 생활하는 부부가 나오는 유튜브 콘텐츠를 본 적이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지 유독 식단에 신경을 쓰고 식후에는 꼭 걷기를 하는 모습이 왠지 마음이 쓰였다. 유튜브 수익 외엔 별다른 수익은 없어 보이니 이 부부도 디지털노마드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노마드라면 부러움의 대상이지 안쓰러움의 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왜 마음이 쓰였을까. 노매드 생활이 진정 그들이 원하는 삶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일까.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세상은 이제 완연히 봄빛으로 계절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다. 저마다의 사연이야 있겠지만, 어떤 이유로 나왔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꼭 이뤄지기를, 그래서 마침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보통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