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에 나섰다가 대포를 맞아 몸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메다르도 자작. 그의 반쪽들은 각각 살아남아 독립된 존재로 살아간다. 한쪽은 극단적인 악이 되고, 다른 한쪽은 극단적인 선이 된다.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의 이 기묘한 설정은 선과 악의 대립을 다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착한 반쪽을 둘러싼 사람들의 미묘한 거리감이었다. 왜 사람들은 악만큼이나 선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일까.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인간 내부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충돌과 악의 욕망에 집중한다면, ‘반쪼가리 자작’은 그 둘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그런데 ‘반쪼가리 자작’이 낯설어 보이는 이유는 ‘악’이 아니라 ‘순수한 선’ 역시 인간 사회에서 쉽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착한 반쪽은 언제나 선한 의도와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의 선행은 종종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때로는 지나치게 순수하고, 때로는 너무 직접적이다. 반대로 악한 반쪽은 분명 파괴적이고 잔혹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오히려 더 명확하게 인식한다. 그는 위험한 존재이며, 따라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은 그렇지 않다. 선은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흔든다.
이 역설은 작품 속 여러 인물의 모습과 겹친다. 의사 트렐로니는 환자보다 연구에 더 몰두하고, 악한 명령에 괴로워하면서도 묵묵히 교수대를 만드는 장인 피에트로키오는 그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문둥병 환자들은 고통을 잊기 위해 쾌락에 기대고, 위그노들은 종교적 형식에 집착한 나머지 신앙의 본질을 놓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되어 있으며, 몸은 온전하지만, 존재는 어딘가 비어 있다.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의사들의 장면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들은 반 토막 난 메다르도를 살려내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분명 선한 의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른 병사들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선의는 의도만으로 완결되지 않으며, 때로는 또 다른 고통을 양산한다. 칼비노는 이 장면을 통해 선과 악의 문제가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판단의 한계에 대한 문제임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착한 반쪽에게서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지나치게 선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신이 가진 불완전함을 의식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과 이기심, 계산과 자존심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상태에서 계산되지 않은 완전한 선의를 마주하는 일은 ‘감사’이면서도 ‘부담’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너무 선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주 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추기 때문이다.
결국 이야기의 끝에서 두 반쪽은 다시 하나의 몸으로 합쳐진다. 그러나 이 결말은 어떤 완성의 순간이라기보다, 결핍의 자각에 가깝다. 선과 악 어느 한쪽만으로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악은 세계를 파괴하고, 극단적인 선 역시 세계와 어긋난다. 인간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다.
흥미로운 것은, 메다르도가 하나의 몸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명한 통치자가 등장했다고 해서 현실의 모순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불완전함 속에 머물러 있고, 세계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반쪼가리 자작’은 인간의 결핍이 개인의 변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선택이라는 행위가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반쪼가리 자작’은 인간을 쉽게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본래 선한 존재인지, 혹은 악한 존재인지에 대한 단정도 없다. 대신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있으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완전한 선에 도달할 수 없고, 때로는 타인의 선의 앞에서 조용히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악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선을 향한 시도를 완전히 멈출 수도 없다.
‘반쪼가리 자작’은 선과 악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작품이 끝내 남기는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선보다 악을 더 쉽게 이해하는가. 혹은, 왜 선은 언제나 조금 더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 낯섦은 결국 우리 자신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별|Editor 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