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예전에는 자주 연락하고 편하게 웃던 사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은 줄어들고 이제는 먼저 안부를 묻는 일조차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바쁜 탓이라고 넘겨보기도 하지만,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마음 한편에서는 알고 있다. 그럴 때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아니면 그냥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걸까.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하나의 큰 사건으로 갑자기 끊어지기보다 작은 감정들이 쌓이면서 서서히 멀어진다. 그리고 그 감정의 시작은 생각보다 사소한 행동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행동들이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행동
처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금전거래이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가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을 알게 되어 가깝게 지냈다. 서로 사는 곳이 멀지 않아 퇴원 후에도 연락하며 자주 만났다. 주로, 주로라고 하지만 그쪽에서 먼저 연락해서 만났다.
그는 만날 때마다 나를 성경 공부하는 모임에 데려가고 싶은 뜻을 내비쳤는데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주1~2회는 꼭 연락해서 안부를 물으며 언제 만나서 커피 한잔하자고 하는데 만나면 성경 공부 얘기할 것이 뻔하니 은근히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언제 한번은 통화 중에 혹시 형편이 되면 300만 원을 빌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빌려야 하는 급한 상황을 설명하며 우리가 편한 사이니까 부탁한다고 하니 현금이 있는지 알아보고 금방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 후로 전화가 안 왔다.
아마 2~30만 원쯤 부탁했으면 쉽게 들어줬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사이는 300만 원보단 가깝지 않았던 거다. 예상은 했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갑작스러운 돈 부탁은 상대에게는 생각보다 무거운 불편함을 준다. 빌려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빌려줘도 괜찮을지, 혹시 거절하면 관계가 불편해지지는 않을지.
사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만 속으로는 미묘한 불편함이 생긴다. 그래서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돈 이야기는 ‘편해서 꺼내는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걸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자끼리, 남녀가 사귀었던 것처럼 헤어지자고 할 수는 없어서 좋지 않은 방법으로 관계를 끊었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말은 조심해야 함을 깨닫게 해준 교훈이 담긴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정치 이야기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행동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된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뉴스 이야기나 사회적인 이슈를 두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화의 방향이 조금씩 바뀐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대화가 아니라 누가 더 맞는지를 가리는 분위기가 된다.
사회에서 어쩌다 알게 된 후배가 있다. 학교 후배는 아니고 그렇다고 동네 후배도 아니고 그냥 후배다. 이 후배는 하는 일이 달라도 자주 만나던 사이인데, 언젠가 있었던 문빠 논쟁으로 지금은 데면데면해지고 말았다.
이 후배는 열성 교인이다. 주일에는 당연히 교회에 가고, 주말에도 가고, 주중이라도 무슨 일만 있으면 교회에 간다. 일은 안 해도 교회는 간다. 이 후배는 나만 보면 교회 나오라고 난리다. 매사에 몸을 아끼면서도 교회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는다. 하나님과는 전혀 친할 것 같지 않은 외양인지라 적응하기가 참 쉽지 않은 후배다.
이 후배는 나만 만나면 “형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왜 사랑하는데?”라고 물어보면 “교회 다니면 사랑이 많아집니다”라고 너스레를 뜬다. 모태신앙이라니까 아마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때 “사랑해요” 하면서 나왔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한번은, 서로 같이 잘 아는 사람과 함께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시국을 걱정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 남자 셋이 모이면 나오는 이야기란 뻔하다. 군대 이야기 아니면 정치 이야기. 우리는 대한민국 남자 공식대로 국내 정치인이란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싸잡아 요리하는 중에 이 후배가 “문재인은 빼시죠”라고 하는데 벙찌고 말았다.
평소에 그렇게 사랑한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문재인에 대해 안 좋은 말 좀 했다고 눈깔이 돌다니. 그때 밥상머리에 올라온 정치인이 문재인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실 문재인에 대해선 문재앙이라 호칭한 것 외엔 시작도 못 했는데 아마 호칭에서 긁힌 건가 싶다. 아니면 당시 대통령이 문재인이어서 듣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반박할 지점을 찾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질수록 내용보다 감정이 먼저 쌓인다. “이 사람과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피곤하다”라는 인상이 남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상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래서 나중에는 굳이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된다. 괜히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른 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차이를 어떤 태도로 다루느냐가 관계를 이어갈지, 멀어지게 할지를 결정한다. 이 후배의 사례는 사상이나 이념에 따른 정치는 신앙만큼이나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당시 후배의 광기 어린 눈알을 생각하면 지금도 섬찟하다.
종교 이야기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종교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이자 기준이 되는 중요한 가치지만, 그만큼 상대에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소중한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마음이 상대의 상황보다 앞서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반복되는 권유는 점점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넘겼던 말도 횟수가 쌓이면 의미가 달라진다.
앞서 300만 원 때문에 관계가 끊어졌던 사람처럼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하게 되고, 그 예상은 종종 거리를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라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전하느냐가 관계에서는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세 가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된 흐름이 하나 보인다. 모두 상대에게 작은 불편함을 남긴다는 점이다. 그 불편함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자리에서는 웃으며 넘어갈 정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호의도 마찬가지다. 주는 사람은 작은 성의였을지 몰라도, 받는 사람은 거절하기 어려운 마음의 빚이 될 수 있다. 윗집에서 받은 쓰레기봉투 다섯 장 때문에 공사 소음에도 한마디 못 했던 경험이 담긴 “세상에 공짜는 없다 ─ 쓰레기봉투 선물 받은 경험담“이 그런 사례이다.
한 번 스쳐 지나간 불편함은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다시 떠오르고, 그 기억들이 조금씩 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뚜렷한 이유 대신 막연한 거리감으로 남게 된다.
사람은 결국 편안한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특별히 더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도 함께 있을 때 부담이 없는 사람, 말을 꺼낼 때 조심스럽지 않은 사람 곁에 자연스럽게 머물게 된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무언가를 많이 해줘야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면 관계를 지킨다는 건 특별한 노력을 더 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순간에 불편함을 느낄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 작은 차이가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오래 이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참 고단한 인생이다. 세라뷔~
보통아재








